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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 인연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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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24 (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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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산소
파일첨부 : ttt떠별.jpg |
조회수 : 2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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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스꼴라를 만나다>
“아 여기 가고 싶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신입생 모집 공지를 보고 나온 첫마디. ‘여행’을 통해 ‘배움’을 실현하다. 정말 내가 늘 꿈에만 그리던 학교였다. 꼭 가야겠다는 생각에, 밤까지 새가며 입학원서를 열심히 써서 냈다. 다행히 1차 원서합격. 2차는 면접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잘 못해 면접 보는 것이 너무 싫었다. 면접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깐깐한 면접관 분들이 쉬지 않고 어려운 질문을 해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곤란해 하는 내 모습이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안고 쉼 호흡을 하며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그 깐깐한 면접관은 찾을 수 없었다. 다섯 분의 면접관들은 다들 다정해보였다. 난 그렇게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면접을 보았다. 며칠 후 떨리는 마음으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승아~ 면접 합격했데~” 우아 2차 면접도 합격. 꿈에 그리던 학교에 합격을 한 것이다. 그것도 1기라니, 나에겐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집에서 영등포 하자센터까지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그 거리를 매일 신나는 마음으로 한 달을 다녔다. 아직 여행은 하지 않았지만 떠별(떠나는 별)들과 조금씩 가까워져서 학교에 가는 것이 신이 났다. 길별(길잡이 별)들과도 좀 친해졌다고 느꼈을 쯤 우리는 도보여행을 떠났다. 지리산 숲길에서부터 진안까지, 4월 1일부터 4월 10일까지 열흘을 걸었다. 난 한달 동안 떠별과 길별들을 좀 알았다고 생각 했는데... 도보여행에서 본 그들에겐 너무나 새로운 모습들이 많았다. 그들의 모습중 반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난 그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본 것은 그들의 지극히 작은 일부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같이 지내는 떠별들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도보여행은 나에게 굉장히 큰 첫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도보여행 때 열흘을 아무 탈 없이 잘 걸어준 내 몸을 신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설레었던 첫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4월 16일 다시 진안으로 떠났다.
<진안을 만나다>
‘난 왜 진안에 왔을까. 왜 하필 진안이지? 우리가 무슨 인연 이길래.’ 난 그 물음에 답하지 못 한 채 진안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도착한 첫날(4월 17일) 우리는 진안 백운면 동창마을 마을회관에서 앞으로 2주 동안 머문다는 신고식으로 마을잔치를 했다.
“뚱땅 뚜두뚜두 땅 뚱땅 뚜두뚜두 땅 두구두구 따다다다 두구두구 따다다다”
다들 쉬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연습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수루두(악기의 심장역할)가 큰소리를 내며 박자를 맞추면 떠별들은 어느새 그 주위에 모여 다시 연주를 했다. 쉬는 시간에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여 연습하고 있는 우리를 보았을 때, 정말 감동이었다.
어느새 발이 척척 맞는 떠별들. 입학해 퍼커션 연습을 할 때, 그 어색한 표정. 그 어색한 발걸음. 그 어색한 몸짓이 떠오른다. 손이 움직이면 발이 안 움직이고, 발이 움직이면 손이 안 움직이던 때. 어느새 몸이 자유롭게 악기를 다루며 걷고 있는 나를 보았을 때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우리 모두가 똑같은 발걸음으로 하나가 되어 연주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퍼커션은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연주를 잘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우리 각자 하나하나가 만든 소리가 이렇게 연주를 하는 구나’ 하고.
마을잔치 전에 초대장을 돌리며 퍼커션 행진을 했다. 로드스꼴라의 첫 공연이었다. 마을 분들이 흥겹게 봐주셔서 그런지 너무 신이 났다. 이렇게 퍼커션이 재밌어질 줄 몰랐다. 악기가 내 허벅지를 멍들게 해도 내 악기(까이샤)가 좋다.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악기를 두드리다 쓰기(리더)가 좀 쉬자고 하면 너무 아쉽다. ‘아 왜 쉬는 거야. 그냥 이어서 하지~’하고 생각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한 날 보며 놀라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퍼커션을 좋아했나?’ 하고. 뭐든 웃으며 신나게 하려고 노력하면 정말 신이 나는 것 같다. 처음엔 그렇게 기분이 아니고 표정도 억지로 지었지만. 하다 보니 정말 흥에 겨워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
마을잔치 때 우리는 잔치국수, 수육, 진달래 전, 부침개, 잡채를 함께 만들었다. 우리가 만들어서 그런가? 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상을 차리고 미니 퍼커션 공연과, 춤 공연도 짧게 준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이셔서 오랜만에 어릴 적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떨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귀엽게 춤을 췄다. 다행히 마을 분들이 즐겁게 즐기고 가신 것 같다. 공연도 무사히 마치고 정리를 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밥상은 이미 초토화.. 그래도 맛있게 드시고 가신 것 같아 남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뿌듯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피곤했던 마을잔치가 끝났다. 하지만 우리에겐 뒷정리와 산더미 같이 쌓인 설거지가 남아있었다... 이미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그들과 함께 뒷정리를 하며 난 생각했다. ‘우린 뭐지..?’ 친구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가족이라고 하기엔 피가 안 섞였고, 식구인가? 지금 까지 내가 가졌던 관계들 중에 이런 관계는 없었다. 뭔가 특별한.. 이전엔 없었던 새로운 관계. 이렇게 난 2주 동안 그들과의 동거를 시작했다.
백운에는 <진안 여행서 만들기>팀과 진안 전체모습을 그려내는 <사람을 만나다 진안을 만나다> 팀이 머물렀고, 마령에는 <그림 수첩 만들기>팀이 머물렀다. 성수에는 <초대도보여행 코스기획>팀이 머물렀다. 난 <초대도보여행 코스 개발>팀이었다. 우리는 백운 마령 성수를 아우르는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고 5월 1,2,3일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걷기로 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답사한 길을 체크하고 지도로 만들어야 했다. 그 일을 하며 우리가 머물 숙소는 마을조사단 사무실이었다. 다른 팀과는 다르게 우리는 함께 생활 할 새로운 식구가 있었던 것이다.
<새 식구를 만나다>
“아...아...안녕하세요”
마을조사단 ‘보리’와의 첫 만남. 처음부터 느껴지는 보리의 강한 포스. 어쩐지 포스가 느껴지더라니. 보리는 마을조사단 일을 하기 전에 대안학교 기숙사 사감 쌤 이었다고 한다.
봉 쌤과 서 선생님도 계시다. 봉 쌤은 마을 조사단 일을 하기 전에 학원 강사이셨고, 서 선생님은 백수였다고 하셨다. 봉 쌤은 성격은 좋아 보였으나,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고, 서 선생님은 좀 무뚝뚝해 보였다. 그렇게 어렵고 무섭기만 한 마을조사단 분들과의 동거가 시작 되었다.
아침이면 보리가 차려주신 밥상에서 우리 팀(알리스, 느린, 태평, 한다움, 산소)은 다들 졸린 눈을 꿈뻑꿈뻑이며 조용히 밥을 먹었다. 아침만 먹으면 그 때부터 기운이 다들 솟아났다. 그렇게 밥을 먹고 마을조사단 사무실에서 모닝 미팅을 한다. 마을 조사단 분들은 다들 바쁘신지 침묵을 지키며 일만 열심히 하고 계신다. 우리는 늘 그 침묵 속에서 모닝 미팅을 했다.
모닝미팅이 끝나면 우리는 대부분 답사를 나가 사무실을 비웠고, 저녁쯤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보리가 차려주신 저녁밥상 앞에서 한참을 낄낄대며 시끄럽게 밥을 먹었다. 하루는 마을조사단과 우리 팀이 동그랗게 모여앉아 인터뷰를 했다. 서로 좀 알아가기 위해. “어떻게 마을조사단에 들어오게 되셨어요?”, “마을조사단 일 하기 전엔 무슨 일을 하셨어요?”, “마을사람들 인터뷰를 많이 하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내용이 뭐에요?” 이렇게 인터뷰 처음엔 인터뷰라는 정해진 대화 형식 때문에 꼭 질문을 막 해야 할 것 같은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마을 조사단 사무실 뒤에 있는 공주 김씨 사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조사단 사무실 북쪽에 사당이 있는데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가위에 눌려 꼭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야해.” 앗, 이런. 어젯밤에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잤는데.. 어쩐지 몸이 뻐근하더라니. 인터뷰 내내 조용히 앉아 듣고만 있었던 내가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네?? 어느 쪽이 북쪽이에요!? 이쪽으로 머리 두고 자면 안 된다고요!?, 나 어제 북쪽으로 머리 두고 잤는데!! 어떡해요, 어떡해요, 어떡해요!!” 마을조사단 분들은 계속 나를 놀리려는 것인지, 우리는 다 귀신을 보았다며 계속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딱딱한 질문으로 시작된 어색한 대화는 그렇게 사당 이야기로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난 무서워서 2주를 어떻게 보내나 고민을 하며, 그때부터 잊지 않고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잤다. 어쨌든 그 때의 대화 이후 난 마을 조사단 분들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씩 편해졌고, 2주가 지난 후에는 가족이 된 것처럼 편했다.
답사를 갈 때,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하면 “그래 잘다녀와~”하고 인사해주시고,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하면 잘다녀왔냐고 반겨주시던 엄마 같은 보리,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시던 큰오빠 같은 서 선생님, 항상 밝게 나를 대해주시던 큰언니 같은 봉 쌤. 우연히 사무실 밖에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마을 조사단 분들 뿐만 아니라 우리 팀 안에서도 친밀감이 쌓여갔다.
<공동작업자를 만나다>
“우리 팀이 제일 화목한 것 같아”
도보여행 코스를 기획하기 위해 답사를 나가던 때.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점심을 사이좋게(?) 먹으며 했던 말. 우리 팀은 정말 웃음이 많았다. 먹기도 참 많이 먹었고, 모이면 쉬지 않고 떠들었다.
우리 팀은 다른 팀들과는 달리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대신 우리는 길을 만났다. 다른 팀들이 사람을 통해 진안을 만날 때, 나는 풍경을 통해 진안을 만났다.
처음엔 ‘도보여행 코스 개발’이라는 프로젝트 명이 너무 낯설었다. 뭘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난 그냥 밖에서 활동하는 일이 많다고 해서 확 끌려 그 팀에 들어간 것인데, ‘우리가 개발을?, 과연......’ 걱정이 태산이었다.
백운 마령 성수를 잇는 도보여행 코스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고민하던 우리는 백운 마령 성수를 거쳐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코스를 기획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선 대충 틀을 잡아놓고 사전조사를 했다. 지나치는 마을을 공부 하는 것이었다. 마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마을조사단 분들이 해놓은 결과물이 있어 쉽게 찾아 공부할 수 있었다. 사전조사를 끝낸 후, 우리는 직접 자전거를 끌고 답사를 했다. 인원은 다섯명, 시간은 고작 2주였다. 우리는 다시 인원을 나눠서 답사를 하기로 했다. 하루는 다 같이 성수 섬진강을 따라 답사를 했고, 다음날 알리스는 식당과 숙소를 알아보러 가고, 한다움, 느린은 백운을 답사하기로 하고, 태평과 나는 마령을 답사하기로 했다. 이렇게 틀이 잡히고, 다시 백운부터 성수까지 거리를 체크하며 다 같이 짜여 진 코스를 자전거타고 답사했다. 그리고 또 다시 백운부터 성수까지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나무로 만든 이정표를 갈림길마다 세웠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작업으로 짜여 진 코스를 지도로 그려냈다. 이렇게 2주 동안 바빴던 우리의 작업은 끝이 났다. 막막하기만 했던 나의 걱정도 어느새 마무리 되었다.
열흘간의 도보여행 덕분인지, 자전거와 걷기를 하며 답사하는데 힘들진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늘 즐겁게 답사를 했고,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정말 환상적인 길을 보았는데, 길이 막혀있던 때. 한동안 아쉬운 마음에 그 길을 떠나지 못하고,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보려 숲속으로 길을 뚫으려고도 했다. 결국 뚫지 못했지만.
2009년 5월 1일, 드디어 우리가 짠 코스를 특별(특별한 별(초대 손님)), 길별, 떠별들과 함께 걸었다. 우리는 가이드 역할을 맡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가 이은 길을 함께 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최악이었다. 2주 동안 열심히 만든 코슨데. 다들 비가와 짜증이 극도일 것이다. 난 우비를 입고 얼굴에 비를 맞지 않기 위해 땅만 보고 걸었다. 다들 이렇게 땅만 보고 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저녁에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이들은 비가 와서 더 좋았다고 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화창한 날 걸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가이드 역할도 무사히 마쳤다.
우리 팀은 이런 작업을 통해 더욱 친밀해진 것 같았다. 공동작업자로서 우리는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를 이해해야만 했고, 그래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공동작업자’로서 처음으로 함께 작업을 한 것이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했을 일을 같이 했기에 팀원들이 더욱 자랑스럽다. 자전거를 타며 내가 보던 그들의 뒷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도로 위를 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서로가 일정한 간격으로 호흡을 맞춰 자전거를 타던 그들. 오후에 답사를 할 때 면 그들 옆으로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자를 보고 난 생각 했다. ‘함께하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고. 진안에서의 작업이 끝난 지금도 그들 옆에 있으면 뭔가 편하다. 말로 표현이 가능 할지 모르겠다. 낯선 곳, 사방에 낯선 사람들뿐인 곳에서 가족을 만난 기분이랄까? 나도 모르게 자꾸 그들 옆을 찾게 된다.
<나를 만나다>
두 달 사이 많은 것들과 만났다. 무엇보다 여행을 통해 ‘나’를 만난 건 참 새롭고 낯선 경험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왜 눈물이 날까. 요즘 들어 이유 없는 눈물이 자주 흐른다. 물론, 이유가 없진 않겠지. 모르는 것일 뿐. 16년을 ‘나’로 살았는데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난 진안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전에는 누구보다도 확실히 답을 가지고 있던 ‘난 왜 살지?’라는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시간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진안인데 며칠 뒤면 서울에 있겠죠. 길게 보면 스무 살이 되어있을 것이고, 아이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고, 할머니가 되어 내가 세상에 없는 날이 올 거에요.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묵묵히 계속 돌아가겠죠.” 그리고 난 지금 서울이다. 진안에서 그런 말을 했었는데 난 지금 서울에 있다. 진안에서의 2주가 지났고, 서울에서 열흘 동안의 짧은 방학도 지났다. 벌써 진안과 헤어진지 열흘이 지났다. 자꾸 시간이 간다.
이렇게 잊고 살았던 물음. “난 왜 살지?”라고 다시 질문했을 때, 난 답할 수가 없었다. 난 진안에서 내내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 고민 또 고민했다.
어느 날은 알리스와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대화를 하게 되었다. “시간이 가는 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했을 때 알리스가 “지금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난 그 말을 마음 깊이 담았고 서울에 와서 또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사는 이유가 다시 생겼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다. 안 태어나면 몰랐을까. 태어나버린 난 태어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나’로 태어났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소중한 생명을 가졌으니 난 내 생을 열심히 살 것이다. 그리고 지금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미래가 어떻든 내가 지금 열심히, 행복하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다. 어짜피 죽을 거 왜사냐? 죽으면 “나”로 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나”가 된 것은 나밖에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렇게 소중한 생명을 가진 이상 끝까지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진안에서의 그 평화로운 여유가 나에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모든 것이 인연으로 만났다.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인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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